새날엔

아빠가 자라 온 길

새날누리 2009. 10. 12. 10:05

아빠가 자라 온 길

1. 어린시절은?

지금보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60년대 아빠의 어린시절은 모든 게 불편했지만 불편하다는 걸 느끼지 못하면서 자랐다.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가전제품은 전혀 없었고 티브이를 보려면 한 시간을 걸어서 다니던 초등학교 숙직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 갈 때는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매고 동네 애향단별로 모여서 줄을 맞춰 군가를 불러가면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 당시는 생활 형편들이 어려워서 책가방 대신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 통을 함께 싸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김칫국이 책에 흘러서 젖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골목에 모여서 못쓰는 깡통을 구겨서 축구도 하고 자치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동네 앞 냇가에서 멱 감기(수영), 썰매타기, 못 치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등등을 하고 놀았다.


2. 어린시절 집안에서의 역할

집안이 가난하여 아버지 일손 돕기를 하고 지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를 끌고 다니면서 풀을 먹이고 꼴망태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낫으로 풀을 베어 망태에 가득 담아서 저녁이 되면 소를 끌고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3. 고등학교 입학하기까지 어떻게 공부했나?

초등학교 시절은 공부에 취미가 없어 그럭저럭 보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서 독서를 하면서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2학년으로 진급할 때까지만 해도 전교 600여 명 중에서 중간 정도 했지만 3학년이 되면서 50등 안에 들어 영재학생들로 구성된 특수학급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사는 곳엔 학원도 없었고 과외는 꿈도 꿀 수가 없었지만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이십리가 넘는 집까지 혼자서 다녔다.


4. 진로를 결정하게 된 동기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이른 봄 첫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전교생 600여 명 중에 27등을 하게 되어 학교 대표가 선발되어 대전까지 기차를 타고 보문고등학교에 학업경진 대회에 나간 기억이 난다. 가을이 되어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공업고등학교로 입학원서를 쓰게 되었는데 평서 나의 실력을 알고 계셨던 김재환 국어 선생님께서 왜 평생을 기름을 묻히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심한 고민과 갈등을 하려다가 부모님과 상의 하여 익산에 있는 남성고등학교에 들어가 육군사관학교를 가서 군인의 길을 가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5. 대학에 가서 하게 된 공부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육군사관학교에 갈 성적이 안 되어서 군인의 꿈은 접게 되었지만 전북대 상대에 진학하고 싶어 부모님을 설득하였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4년제 대학 진학은 포기해야만 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빨리 졸업하여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 당시 군대 면제를 받는 2년제 교육대학을 들어가게 된 것이다. 공주교육대학에 어렵지 않게 들어가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초등학교 교사로 일찍 발령을 받게 된 것이다.


6. 직업을 갖고 부모님께 해드린 일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봉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월급의 전부를 송금하여 가르치면서 진 빚도 갚으시고, 송아지도 몇 마리 사드렸으며, 쓰러져 가던 초가집도 개량하여 증축하였다. 또한 동생들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학비를 마련하여 주었다.


7. 자식을 키우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말을 듣지 않을 땐 너무나 마음 아팠지만, 자식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성적도 오르고 장학금도 타고 상도 받아 왔을 때 기뻤으며, 가족끼리 즐겁게 여행도 하고 자식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는 모습을 볼 땐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어 큰 보람이 있었다.


8. 앞으로의 계획

가족들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아무런 사고 없이 각자 하고자 하는 일 열심히 하기를 바라며, 우리 가족 지금 보다 더 좋은 집에서 함께 살기를 바란다. 또한 아빠의 능력만큼 자식들이 공부하는 것 뒷바라지 하고 오순도순 우애있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9. 자식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지금 우리 가족의 형편과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고 형제간의 우애있는 모습 보여주고 건강하기를 바란다.


10. 대학을 다니며 가장 즐거웠던 일은

대학에서 고등학교에서 경험 해보지 못한 젊은이의 꿈과 낭만을 누리기도 했지만, 나의 진로를 안내 해주는 멘토가 없어 안타까웠다.